저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어린 시절엔 목요탕 몇 번 같이 동행한 거 외엔 외식, 외출, 쇼핑, 교회, 나들이등등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니까.
그런데도 나이 들어 사후에도 간간히 생각나는 추억이 바로 민물낚시를 같이 나간 것입니다.
부산 하단 엄궁 을숙도 근처와 목포 영산강 유역 하고에서장뚜어 낚시를 했던 기억만은 평생을 두고 생각이 납니다.
중학 시절 친구와 아버지 따라 낚시 다녀온 뒤 일기장에 옮겨 놓은 그날의 즐거움을 옮겨 보았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친구 봉우와 함께 아버지의 낚시를 따라 가기로 한날이다.
"봉우야! 낚시 가자"우리 집은 아미동에서도 가장 높은 동네에 자리하고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 구부구불 고개를 넘어가면 대티고개가 나온다.
봉우와 콧노래 부르며 낚시가방 한 개씩 둘러메고 투스텝 밟으며 즐거운 마음을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앞에서 가시는 길을 따라간다.
고개를 넘어가는 동안에는 소나무 숲과 제법 많은 산소들이 놓여있는 언덕을 넘어간다.
동네 친구들과 평소 자주 놀러 올라왔던 작은 산이다.
긴 옥수숫대를 간추려 칼싸움도 많이 하뎐 곳이다.
작은 산에는 봄이면 예쁜 들꽃, 야생화가 많이 피어 아름다운 곳이다.
친구들과 산에서 뛰어다니며 장난도 치고 하면서 많이도 산소를 뭉개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고인들에겐 정말 미안타.
우리는 산을 지나 버스길가지 나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한 시간 정도를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친구와 웃고 떠들며 간다.
비포장 도로여서 버스뒤로 보이는 먼지는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때로 돌부리에 뛰는 버스에 머리가 버스 천정에 부딪칠 뻔도 했다.
그렇게 장난치며 낚시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갈대가 무성한 숲 사이로 게들도 무수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장비를 아버지가 정리해주면서 첫 낚시하는 우리를 위해 갯지렁이 미끼 까지도 일일이 끼워 주시고 낚시법을 설명해 주셨다.
아버지와 달리 우리는 한 마리의 붕어도 잡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나의 찌가 물속으로 뽁뽁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길래 얼른 낚싯대를 힘차게 뒤로 확 젖혔다.
봉우가 "와, 붕어다"소리를 질렀으나 순간 허탈한 상황이 앞에 벌어졌다.
붕어 주둥이만 잘려 올라온 것이다. 첫 낚신대.. 그렇게 시간만 가고 붕어는 아버지 낚시에서만 계속 올라왔다.
그럭저럭 점심때가 되고 허기가 왔는데 아버지께서 붕어찜을 준비해 주셨다.
냄비 뚜껑을 열자 고춧가루에 범벅된 붕어찜이 맛있게 보였다. 냄새 또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요리라는 생각이다.
뻘냄새랄까, 흙냄새랄까 묘한 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으스럼한 저녁쯤인데 마당에 할머니께서 빨래를 걷고 계시다 우리와 마주쳤다.
"많이들 잡아왔냐?"
할머니께 몇 마리 되지 않는 낚시가방을 열어 드리자, 피식 웃으시며 "니놈 장가갈 때 쓰게 곱게 말리자"하신다.
난 어느덧 뒤통수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친구 봉우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봉우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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